살다 보면 한 번쯤 “내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까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태어난 가정과 유전자, 어린 시절의 경험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성격과 행동, 앞으로의 삶까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현대 유전학과 뇌과학은 이 질문에 단순히 그렇다거나 아니라고 답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유전적 영향을 받지만 환경과 경험에 반응하며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는 인생의 설계도일까요?

우리는 부모에게서 DNA를 물려받습니다. 키와 눈동자 색뿐 아니라 성격, 인지능력, 정신건강과 다양한 행동 특성에도 유전적인 영향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유전자 속에 우리의 인생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일란성쌍둥이와 이란성쌍둥이를 비교하는 연구입니다. 2015년 Nature Genetics에 발표된 대규모 메타분석에서는 2,748편의 연구와 17,804개 인간 특성을 분석했으며, 조사된 특성 전체에서 보고된 평균 유전력은 약 49%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특성에 유전적인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전력이 50%라는 말은 한 개인의 성격이나 인생이 50% 유전자로 결정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전력은 특정한 인구집단과 환경에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어느 정도 유전적 차이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통계적 개념입니다.

더구나 2023년 쌍둥이 연구에 대한 종합 리뷰에서는 동일한 유전적 배경을 가진 일란성쌍둥이도 질병과 행동 특성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유전적 영향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약
유전자는 인간의 성격과 건강, 행동에 분명한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유전력은 개인의 미래가 몇 퍼센트 결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며, 유전적 영향을 곧바로 운명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유전자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대 유전학에서는 유전자와 환경을 서로 완전히 분리된 힘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개념은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입니다. 같은 유전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도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실제로 나타나는 행동이나 건강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024년 Nature Reviews Genetics의 종합 리뷰에서도 유전적 변이와 환경적 노출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복잡한 특성과 질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정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는 환경과 독립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생물학적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어린 시절의 영양, 교육, 가족 관계, 만성 스트레스, 사회적 경험, 운동과 수면 같은 생활습관은 모두 개인이 성장하는 환경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같은 환경에도 서로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동시에 사람이 자신의 환경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여 더 많은 사회적 경험을 만들고, 어떤 분은 조용한 활동을 선호하여 다른 종류의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결국 인간의 삶은 유전자와 환경 가운데 하나가 승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두 요소가 계속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요약
유전자와 환경은 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같은 유전적 특성도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사람 역시 자신의 행동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경험은 실제로 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입니다. 신경가소성이란 경험과 학습, 훈련 등에 따라 뇌의 기능과 연결 방식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뇌 구조가 거의 고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뇌영상 연구에서는 성인의 뇌에서도 학습과 훈련, 운동과 다양한 경험에 따라 구조적·기능적 변화가 관찰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2026년에 발표된 인간 뇌의 경험 의존적 구조 변화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운동 학습, 공간 학습, 지각 훈련, 언어 학습, 운동과 스트레스 같은 경험 이후 짧은 시간 안에도 MRI에서 측정 가능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들을 종합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빠른 MRI 변화가 장기간 지속되는 해부학적 변화와 완전히 같은 의미인지는 계속 연구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뇌가 과거 경험을 그대로 보존하는 고정된 장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운동을 반복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이전과 다른 행동을 반복하면 그 경험은 신경회로가 작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신경가소성이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이와 건강 상태, 유전적 특성, 환경적인 제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신경가소성이 말해 주는 것은 인간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모든 조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약
신경가소성은 경험과 학습에 따라 뇌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에게 생물학적 한계는 존재하지만 뇌가 평생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가 출발점을 만들지만 미래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까요? 현재의 과학으로는 인간의 삶 전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의 결과로 결정되어 있다고 증명할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 선택하지 못한 조건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부모와 유전자, 출생지역, 어린 시절의 경제적 환경, 성장 과정에서 겪은 사건 가운데 많은 부분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성격과 습관, 건강과 기회의 범위에 실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건들은 하나의 출발점이지 반드시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이후의 경험과 관계, 학습, 생활습관과 반복적인 선택 역시 우리 몸과 뇌 그리고 행동의 방향에 계속 영향을 줍니다.

인생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한다면 유전자는 첫 페이지의 일부를 써 놓았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환경 역시 여러 장면을 이미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쓰여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과거와 바꿀 수 있는 현재를 구분하는 것이 이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어제의 경험은 오늘의 뇌에 흔적을 남겼지만, 오늘의 경험 역시 내일의 뇌에 새로운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습니까?”라는 질문만 반복하기보다 “지금부터 어떤 경험을 반복할 것입니까?”라고 질문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작은 운동 하나, 새로운 공부 한 가지, 사람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오래된 습관을 바꾸려는 작은 시도가 곧바로 인생을 뒤집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선택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은 다시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까요? 과학이 지금까지 보여주는 답은 적어도 “유전자 하나가 인생 전체를 결정합니다”는 아닙니다. 우리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경험을 통해 계속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인생의 출발선은 선택하지 못했을지라도, 다음 한 걸음을 어디에 놓을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약
유전과 어린 시절의 환경은 삶의 중요한 출발조건을 만듭니다. 그러나 경험과 학습에 따라 뇌와 행동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조건이 한 사람의 미래 전체를 그대로 결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참고문헌